Meet People through the Flower
FLRY와 함께 하는 활동에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자원봉사를 통해 지금까지 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활동을 경험해 보세요.
꽃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갈 수 있습니다.
꽃과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플리의 뉴스레터가 매월 찾아갑니다.
사단법인 플리 | 대표 김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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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RY SUPPORTERS
플리서포터즈(FLRY SUPPOTERS)는
플리의 다양한 나눔활동에 직접참여해서
꽃으로 기쁨과 위로를 전달하는 분들의 이야기 입니다.
# 이혜정
지금 하는 일은
인천에 있는 고등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학교생활이 사무적인 일이 대부분이다 보니 제가 맡은 일을 제외하면 더 바쁘거나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이 다른 회사에 비해서 적어요.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이 한정적이거든요. 발령이 주기적으로 나도 그 사람들이랑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길지는 않아요.
하는 일 자체가 되게 정적이어서 주중에는 지루할 때가 많아요. 월화수목금이 되게 루즈한 삶이었다가 주말에 플리를 다녀오면 기분이 전환되는 느낌이에요. 같이 활동하거나 모이면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는 거잖아요.
처음엔 부케 수업을
들었어요. 너무 재밌어서 친구들이 결혼할 때마다 부케를 선물했어요. 제가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메말라 있는 것 같아서 머리가 너무 복잡하니까 생각도 많아지고 그저 쉬고 싶더라고요. 마침 상사분이 꽃꽂이를 해보라고 권하셔서 시작했는데 온전히 꽃에만 몰입을 하다 보면 머리가 가벼워지는 걸 느꼈어요. 꽃을 배워서 플로리스트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안정적이고 편한 직장이라 쉽게 쉽게 못 나오겠더라고요. 아직까지는 꿈으로만 가지고 있어요.
꽃 선물하는 걸
좋아해요. 엄마한테 제일 많이 했어요. 친구들 부케를 만들어 주기도 했고. 어니스트 플라워 정기 구독을 하고 있는데 꽃이 오면 여직원들이 꽃 왔냐고 예쁘다고 좋아하세요. 잘 말려서 자리에 놔주기도 해요. 그렇게 해서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꽃을 보면 우선 기분이 좋으니까.
저희 엄마도 꽃을 가져다 드리면 진짜 좋아하시거든요. 유명한 꽃집에서 사간 게 아니라 봉사활동을 하고 남는 꽃을 훅 말아서 갖다 드릴 때도 있고 클래스에서 함께 만든 걸 가져갈 때도 있어요. 그 때마다 너무 좋아하세요. 엄마가 가게를 하시는데 종일 혼자 척박한 곳에서 매일 일하다 보면 얼굴에 피곤이 보여요. 그런데 꽃을 가져가면 환하게 웃음이 번지면서 꽃을 들고 있는 걸 찍어 달라고 하세요.
플리를 알게 된 건
네이버에서 포스팅을 보고 플리 봉사활동을 신청했어요. 신청한 것도 잊고 있었을 무렵에 플리 대표님 전화를 받았어요. 당시 인천팀의 리더분이 개인사정으로 계속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혹시 대신 맡아줄 수 있는지 여쭤보셨거든요. 리더가 많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된다고 조심스레 말씀하셨는데 흔쾌히 "전 좋아요" 했어요. 지금도 버겁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인천 팀을 이끌면서 힘든 건
없었어요. 팀원들 복이 진짜 많아요. 팀장들끼리 모여서 얘기 하다가 알았는데 갑자기 펑크를 내는 봉사자 분들이 많데요. 급하게 사람을 못 구하면 결국 본인이 하셔야 되는 거죠. 저희 팀은 펑크를 내신 분이 거의 없어요. 회사 사정 같은 이유로 1~2분 정도만 있었지 나머지 팀원들이 커버할 수 있는 정도였거든요.
팀원들이 오히려
고생 많이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세요. 다들 바쁘니까 상대적으로 좀 더 여유 있는 내가 좀 더 움직이면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하겠다고 얘기하는 건데 팀원들이 고맙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좋아서 하는 건데 민망할 때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그 분들이 저보다 더 바쁘게 살고 그 하루를 쪼개서 플리에 참여하시는 거니까. 내가 좀 더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인천 지역의 수혜기관은
2018년 상반기엔 두 곳 정도였는데 하반기에 확 늘었어요. 2~3군데에서 5~6군데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에요. 아무래도 지하철 노선이 기니까 기부는 서울에서 들어왔는데 수혜기관ㅊ 인천인 경우 차량 봉사하시는 분이 왕복 몇 십 km를 뛸 때도 있어요. 고정기부처플리 생기고 양도 많아지면서 여러 군데 갈 수 있어 다행이에요.
처음 봉사를 시작했을 땐
꽃을 수거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라노비아 웨딩 꽃을 수거하러 가면 힘들다는 생각을 안 했었나 봐요. 일반 예식장은 식장 밖에서 기다리다 수거하는데 야외 웨딩을 구경하는 것도 너무 재밌었어요. 야외 웨딩은 그 때 그 때 시간마다 꽃이 바뀌니까 그걸 보는 재미도 있고요.
처음에는 하나하나 저희가 수거를 하다 보니 목장갑이 필수였어요. 지금은 서로의 역할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서 라노비아 대표님이 아치까지 수거할 수 있도록 담아주세요. 처음에 팀원들과 수거하러 가서도 밖에서 논다는 기분에 들떴거든요. 꽃을 얻어 와서 잔뜩 펼쳐 놓고 여기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너무 재밌는 거죠. 거의 매주 기부를 해주셔서 매주 라노비아 웨딩에 갔어요.
숨은 플리의 주역이
많아요. 고정 기부처인 라노비아도 그렇고요.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기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선택이거든요. 예전에 플리대표님이 가장 좋은 건 기부자가 그 꽃을 직접 들고 수혜처에 가서 같이 꽃을 만드는 거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 땐 흘려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 분들은 그 꽃이 어디 가는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이 꽃은 누구한테 어떻게 갈 것이다 최대한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사무국에서도 사진들을 보내주시고요. 사실 꽃이 비싸잖아요.
꽃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예요. 당장 내 결혼식에 와주신 손님들에게 그 꽃을 드리고 싶지 그 꽃을 놔뒀다가 드리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인데 너무 감사한 거예요. 플리 활동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이 분이 직접 못 가니까 꽃을 대신 전달해 드리는 그 생각과 그 과정이 너무 재밌어요.
수혜기관에 가면
거기에 근무하시는 요양사나 선생님들이 "우와 꽃이네!" 하면서 환대해주세요. 향기도 맡아보시고요. 저희가 사간 건 아니지만 선물을 들고 간 느낌이에요. 한 편으로 그런 걸 보면 마음 아플 때가 있어요. 한국이라는 사회가 되게 척박하잖아요. 지나가면서 퇴근할 때 꽃 한 송이 들고 가도 되는데 그렇게 여유롭지 못하다는 거에 한편으로는 씁쓸할 때도 있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은
국립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플라워 클래스를 진행했을 때 오셨던 할머님이 계세요.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계신 곳이라 클래스를 열어 보호자분들한테 꽃을 같이 만들어 보고 가져가시게 하거나 만들어서 가져다 드리고 있어요. 나중에 들었는데 보호자분들이 명동성당에서 오는 꽃을 많이 의지하신데요. 아무래도 성당에서 왔다고 하니까 그 꽃에 의지를 하시는 거죠. 호스피스 병동은 정말 조용하거든요. 그런데 플라워 클래스를 준비하다 보면 저희끼리 정말 활기가 돌아요. 왁자지껄 하고 나면 우리가 너무 떠들었나 생각이 들기도 해요. 보호자분들께 참여해보세요 라고 돌아다니면서 알려드리면 처음엔 쭈뼛쭈뼛 오세요.
하루는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 한 분이 오셨어요. 보통 할머님들이 오시면 이런 저런 얘기 많이 하시는 편인데 그 분은 조용히 와서 꽃만 꽂고 가시는 거예요. 너무 잘하셔서 혹시 해보신 적 있는지 여쭤봤는데 수줍게 해 본 적은 없지만 꽃을 이렇게 만져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렇고 조용히 꽃을 꽂으면서 미소를 머금고 가셨어요. 할머니도 여잔데 머리가 백발이 되신 상태에서 꽃을 꽂아도 여자는 여자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장면이 머릿속에 계속 남아요. 아직도 기억에 선하거든요.
평화의 샘에는
가기 전부터 걱정을 많이 했어요. 상처가 있는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걸고 어떻게 대해야 할까 가기 전부터 고민을 많이 했어요. 특히 한참 예민할 중고등학생이라 더 그랬나 봐요. 그것도 선입견일 뿐인데 우리가 평소에 얘기하듯이 하면 되는데 그걸 많이 걱정했나 봐요.
국립도서관에서 결혼한 신부님이 그 날 꽃을 기부해주셨어요. 흰색 프리지아 몇 단을 사서 버진 로드에 꽂은 게 전부였는데 수거하는 팀이 갔을 때는 식이 다 끝난 상태여서 프리지아를 밖에 내놨었데요. 도매시장에서 팔 때 단 대로 묶은 상태 그대로였는데 꽃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았어요. 흰색 꽃이 노랗게 빛이 바랠 정도로 시들어 있었거든요.
그 친구들이랑 시든 꽃을 함께 정리하는데 이 얘기 저 얘기 할 얘기가 너무 많은 거예요. 만들어서 누구를 줄까 고민도 같이 하고요. 꽃이 꼭 싱싱해야 좋을 필요는 없구나. 꽃이 정말 매개체가 되는구나. 내가 왜 처음부터 이 친구들과 대화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했을까. 집에 오는데 마음이 좋더라고요. 다음에 수업을 가면 선생님 또 오셨냐고 손잡고 오늘은 무슨 꽃 가져오셨냐고 얘기하면서 다가오는데 마음이 짠했어요. 반갑게 맞이해 준 것도 고맙더라고요.
클래스가 끝나고 시설 담당하시는 선생님이랑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후원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셨어요. 금전적인 부분이 아니어도 정기적으로 만나서 친구들과 수업을 한다거나 얘기를 한다거나 할 수 있는데 사실 엄두가 안 나서 못하고 있어요.
쉽게 시작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먼저 금전 기부부터 시작을 했는데 나중에 플리 봉사자 한 분이 봉사를 시작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한 달 두 달 만나고 끝날 게 아니라 몇 년을 쭉 만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을 때 시작하고 싶어요.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가 아예 없어지지는 않는데 거기에만 매어있지 말고 세상의 다양한 걸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구룡마을 봉사는
큰조카 시연이와 함께 해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가 플리 봉사활동을 하면서 꽃을 만들었던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어요. 시연이가 직업 체험하는 곳에 갔다가 플로리스트를 보고 거기서 꽃을 만들어서 찍었더라고요. 색감을 고르는 것도 잘해서 새언니가 미술을 보낼까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새언니가 간호사인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에요.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스타일이죠. 시연이가 너무 좋아할 것 같다고 함께 구룡마을 봉사활동에 왔어요. 시연이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나이에 비해 생각이 성숙하거든요. 생각보다 꽃도 조용하게 잘 꽂고 나눠드리고 너무 잘해서 기특했어요.
단순히 시연이가 좋게 재밌게 놀다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데려왔는데 너무 잘하고 같이 오시는 분들이 예뻐해 주셔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시연이가 자기는 이렇게 어려운 곳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사시는 줄 몰랐데요. 저도 사실 처음 갔을 때 판자촌을 보고 놀랐거든요. 시연이가 할아버지 할머님들이 앞으로 행복하시라고 편지도 썼더라고요.
새언니가 시연이가 구룡마을에 가서 많이 배우고 왔다고 해서 뿌듯하기도 하고. 또 그 날 찍은 시연이 사진이 너무 예쁘게 나온 거예요. 전문 카메라로 찍어주셔서 소위 인생사진을 많이 건졌어요. 나중에는 지금 다섯 살인 조카 가온이도 데려가고 싶어요. 그 때까지도 계속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예상치 못한 변수가늘 생기죠. 하루는 인천 만석동에 있는 시설에 봉사를 간 적이 있는데 갑자기 봉사활동을 취소한 적도 있어요. 고정 기부처인 라노비아에서 꽃을 하객들에게 나눠드리고 남은 꽃을 저희에게 주시는데 아치는 항상 저희 몫이었거든요. 그런데 야외 웨딩을 하는 예식장의 사장님이 아치가 너무 예쁘다고 하신 거죠. 아치를 그대로 디피해서 웨딩홀에 온 손님들이 직접 볼 수 있게 그대로 말리자고 하셨데요. 그래서 갑자기 꽃을 주실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아치만 해도 꽃 양이 어마어마하거든요. 꽃 양이 확 줄어서 꽃을 사러 뿔뿔이 흩어지고. 그 때 저희는 학교 벤치를 빌려서 클래스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시연이를 데리고 사촌오빠가 오는 길이었어요. “오늘은 꽃이 없어. 미안해.” 하고 다음 기회를 기약했던 적이 있어요.
인천의료원에는
정신과 병동에 수업을 진행하러 간 적이 있어요. 그 때도 긴장을 많이 했어요. 보통 병원은 알러지 때문에 꽃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잖아요. 걱정이 되었던 게 아프신 분들이라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서 긴장한 상태로 수업을 진행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과격하고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게 순조롭게 수업을 잘 진행하고 나왔거든요. 어떻게 보면 이것도 편견이잖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플리를 통해
조카들이 우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봉사를 시작한 게 누구를 도우려는 마음 때문은 절대 아니었어요. 단순히 다른 사람에 비해 퇴근 시간이 빠른 편이에요. 퇴근 후에 여가를 충분히 즐기고도 남을 정도지만 낭비하는 게 싫더라고요. 이 시간을 쓸데없이 보이는 게 싫은 거예요. 조금이라도 내 시간이 좋은 곳에 쓰이면 좋겠다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조카들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게 자연스럽게 묻어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저희 세대나 윗세대는 봉사라 하면 내가 가진 걸 나누는 거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봉사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으면 좋겠어요. 편견에서 벗어나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하고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유가 있을 땐
요즘엔 마음이 답답할 때는 퇴근하고 커피샵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집에 가요. 이전에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친구도 열심히 만났어요. 출석률이 99%일 정도였어요.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그래서 플리 활동이 없을 때는 오히려 허전해요. 봉사라는 게 중독성이 있어서 처음 시작은 어려운데 한번 시작하면 오히려 안 하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저희 팀원들이랑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면 토요일은 어디 일요일은 어디 이렇게 나눠서 2~3군데씩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플리 뿐만 아니라 시간을 쪼개서 알차게 보내시는 분들이 많아요. 일로 만나다 보면 늘 좋을 수 없는데 플리에서 만나는 분들은 서로 선한 에너지들이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플리를 알리게 되더라고요. 친척동생도 여자친구랑 같이 와서 구룡마을에 꽃을 전해드리고 갔었어요. 되게 뿌듯해 하더라고요.
꼭 해보고 싶은 이벤트
팀원들한테도 미리 얘기해 놨어요. 학교 입구에 꽃길 만들어주는 이벤트를 해보고 싶어요. 꽃처럼 예쁘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학교 앞에 꽃길을 만들어 논 걸 본 적이 있는데 너무 괜찮은 거예요.
저희 학교가 남자 공고라 험한 뉴스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요. 친구들이 가해자가 되어 있기도 하고 소년원에 들어간다는 소식도 일주일에 한 건 정도 들리면 씁쓸하더라고요. 공부한다고 자퇴하는 줄 알았는데 일주일 뒤에 소년원에서 학교에 생활기록부를 요청한다던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씁쓸한 거예요. 자퇴서를 쓸 때 봤던 친군데 하면서요.
하교할 때 꽃을 한 송이 준다던지 척박한 곳이지만 그 꽃을 보는 순간만 잠깐 웃어도 충분할 것 같아요. 넌 꽃처럼 예쁜 아이다 세상을 좋게 보고 그 마음이 누적되면 뾰족뾰족했던 마음이 둥글둥글 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아직은 여러 이슈들이 있어서 진행은 못하고 저희 팀 채팅방에서 얘기한 게 전부에요. 학교와도 논의가 되어야 하고 아무래도 예민한 시기이다 보니 봉사자 분들도 주면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나중에 천천히 해 보면 괜찮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되게 좋아할 것 같아요. 겉으로는 말은 세게 해도 속은 아직 애기에요. 단순히 꽃만 주는 게 아니라 꼭 코멘트를 달아야 해요. 꽃처럼 예쁘게 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플리를 만나 변하게 된 부분
플리에 참여하면서 플리로 이직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아예 여기에 몸을 담고 같이 일을 해보면 어떨까. 봉사자로서는 모든 걸 내놓을 수 있는데 가서 내가 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아직까지는 플리 서포터즈로 계속 활동하려고 해요.
플리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플리는 단순한 단체가 아니라 생명체 같아요."
출처 입력
전에 보육원에 봉사를 다닐 때는 틀이 정해져 있었어요. 봉사를 하는 날은 깨끗한 면 옷을 입고 아이들과 한 시간 동안 놀아주고 헤어지는 그 룰을 따라야 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봉사를 한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지루한 감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플리는 달랐어요. 봉사의 느낌보다는 살아서 움직이는 쌍방향으로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요. 상대방의 리액션을 보면 저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거죠. 이게 단순한 단체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플리도 어느 정도 틀은 있지만 그 속에서 변화하는 게 정말 많거든요. 순간순간 그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필요하고요.
한번 활동을 하고 오면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를 엄마한테 얘기하게 되고 그럼 엄마도 옆에서 맞장구를 쳐주시면서 이야기 거리가 이만큼 생겨요. 그게 정말 신기해요. 봉사는 봉사인데 봉사만 한다기 보단 꽃을 만지면서 같이 놀다가는 느낌이에요. 이제 네살인 조카 가온이가 시연이처럼 초등학생이 되면 토요일마다 플리 봉사활동에 데려가고 싶어요. 플리가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하는 이유에요.
FLRY와 함께하고 계신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꽃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알아가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